| "중용(中庸)의 도 취하면 길하지만, 끝까지 다투면 흉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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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1182 작성자 : 문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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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의 도 취하면 길하지만, 끝까지 다투면 흉하다"
서상욱의 주역산책<11> 송괘의 괘상과 효사는?
서상욱(사학자) ㅣ 기사입력 2012/11/07 [10:11]
<송괘(訟卦)>
어쩔 수 없이 재판을 받아야 하지만,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卦辭 - 訟有孚(송유부), 窒惕(질척), 中吉(중길), 終凶(종흉). 利見大人(이견대인), 不利涉大川(불리섭대천).
初六 - 不永所事(불영소사), 小有言(소유언), 終吉(종길).
九二 - 不克訟(불극송), 歸而逋(귀이포), 其邑人三百戶(기읍인삼백호), 无眚(무생).
六三 - 食舊德(식구덕), 貞厲(정려), 終吉(종길). 或從王事无成(혹종왕사무성).
九四 - 不克訟(불극송), 復卽命渝(복즉명유), 安貞吉(안정길).
九五 - 訟元吉(송원길).
上九 - 或錫之鞶帶(혹석지반대), 宗朝三褫之(종조삼치지).
괘사 - 송(訟)은 괘명으로 쟁송(爭訟) 즉 재판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송괘에서는 어떻게 쟁송을 해야 이기는가라는 지혜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툼을 피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믿음이 있으나 막혀있으니 경계를 해야 한다. 중용(中庸)의 도를 취하면 길하지만, 끝까지 다투면 흉하다. 송사는 최선을 다하여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어쩔 도리가 없을 경우에 선택하는 최악의 해결책이다. 분쟁을 해결하고자 할 때는 구오와 같은 중용의 도를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
'불리섭대천(不利涉大川)'은 대인을 만나서 송사를 유리하게 마치더라도 결국은 험난함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뜻이므로 구이가 송사를 그치고 편안하고 조용한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부(孚)'는 성실하여 신뢰할 수 있음을, '질(窒)'은 막혀있어서 통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척(惕)은 경계한다는 뜻이며, '중(中)'은 중용의도를 가리킨다. 다른 의견으로는 '중길종흉'을 도중에는 길하지만 결국은 흉하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까이 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 심하게 말하면 가까이 하지 않아야 행복한 사람들이 있을까? 첫째는 의사, 둘째는 판검사나 변호사 또는 경찰, 셋째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세 부류에 속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건강하면 의사를 만날 필요가 없고, 남과 등지고 원수처럼 싸울 일이 없으면 법조인들을 만날 필요가 없으며, 정치권력과 가까이 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면 자유롭다.
지금 우리는 단군 이래로 가장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지수까지 최고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행과 불행이 워낙 주관적인 개념이므로 함부로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위에서 거론한 세 부류의 직업을 가지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을 보면 물질적 풍요 대신에 험난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송괘의 괘사를 요즈음 현실과 감안하여 풀이해보자. 송사를 일으켜야 하겠다는 확신을 가졌지만, 마음은 답답하고 두렵다.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中吉), 모든 소송의 끝이 좋을 일이 있겠는가? 결국은 흉하게 된다. 송사에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권력자를 찾아간다(利見大人).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산도 명예도 인심도 잃게 될 것이다.
《대학》에서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소송을 시작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군자의 덕성이라고 했다. 왕필(王弼)도 다툼의 근원을 막아서 송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송은 언(言)과 공(公)으로 구성되었다. 언은 다툼을 의미하며 공정하다고 인정되는 제3자에게 결정을 의뢰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 분쟁의 당사자가 시비를 가려줄 제3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소송의 공정성 자체가 불신을 받게 된다.
서괘전(序卦傳)에서는 음식의 도를 의미하는 수괘(需卦) 다음에 송괘를 둔 것은 음식을 두고 사람들 사이에 반드시 다툼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송사의 원인이 음식 때문이라는 설명은 궁색하다. 송사가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대상(大象)에서는 천도와 물이 엇갈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것이 송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주역의 괘상을 이해하려면 중요한 원칙을 알아야 한다. 상괘는 아래로 내려와야 하고 하괘는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조화를 통한 생명력이 유지된다.
하늘의 성질은 높은 곳에 있으려고 하며, 물의 성질은 아래로 흐르려고 한다. 하늘과 물은 자기의 성질대로 움직인다. 운동의 방향이 반대인 것이다. 반대로 움직이니 호응하고 화합할 수가 없다. 상하가 일치되지 않으니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늘이 도를 정해두었지만 아래의 물은 그 도를 어기고 아래로 흘러가버린다. 그렇다면 잘못은 먼저 누구에게 있을까?
공자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송사에 대해서 듣는 것은 나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이지만, 반드시 송사가 없어지게 하고 싶다(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
근본적인 문제는 송사에 명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송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송사를 일으키는 이유는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익을 두고 다툴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공자는 그 방법으로 예(禮)를 통한 교화(敎化)와 예(藝)를 통한 심성의 순화를 강조했다. 법으로는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건강에서 '치미병(治未病)'에 대한 관념과 같다. 대상에서 군자는 하늘과 물이 엇갈리는 것을 보고 일을 계획할 때는 시작부터 철저히 다진다(作事謀始)라고 한 말은 처음부터 가능하면 송사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초육 - 소송의 첫 단계이다. 송사를 길게 하지 않으면 조금은 비난하는 말을 듣게 되지만 마침내 길하게 될 것이다. 초육은 유약한 음이 양의 자리에 있어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 못한 상황이니 분쟁을 일으키더라도 이기지 못한다. 따라서 분쟁을 오래 끌고 갈 능력이 없다. 괜히 분쟁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서로 응하고 있는 구사의 도움을 받아서 결국은 분쟁상황에서 벗어난다. 구사는 자문에 응한 변호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변호사의 중재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다.
구이 - 하괘인 감괘에서 유일한 양효이므로 유연하게 대처하자고 주장하는 초육이나 육삼과 달리 강성 대응을 주장하는 소송의 주체이다. 그러나 양효로서 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소송을 펼칠 정당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 게다가 권위와 정당함을 지니고 있는 상구와는 적응관계이다. 그러니 송사를 해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다. 포(逋)는 도망친다는 뜻이다. 이해하기에 난해한 것은 뒤의 판단사인 기읍인삼백호무생(其邑人三百戶無眚)이다.
여러 주석서에서 다양한 풀이를 했지만 대부분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우선 생(眚)은 백태가 눈동자를 덮는 질병을 가리키므로 재난 또는 불행을 의미한다. '생(眚)'은 스스로 잘못을 저질러서 얻은 재앙을 가리키며, 주로 감괘(坎卦)에서 사용된다. 그에 비해 '재(災)'는 천재지변과 같이 사람의 능력으로 어쩔 수가 없이 발생한 재앙을 가리키며, 주로 리괘(离卦)에서 사용된다. 그러므로 무생은 화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왜 읍의 사람 300호라는 말을 했을까?
고형(高亨)은 다음과 같은 고사를 들어서 구이효의 판단사를 설명했다. 옛날에 300호를 봉읍으로 받은 대부가 있었다. 그에게 학대를 받은 고을 사람들이 소송을 걸었다. 소송에 진 그가 고을을 빼앗기고 도망을 치니 고을 사람들은 비로소 재앙에서 벗어났다. 왕필(王弼)은 양강한 구이효가 그리 만만하게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가 300호 정도 되는 고을로 도망친 이유가 세력을 다시 결집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소송에서 지면 순순히 물러나야 하지만 득중을 한데다가 음험하고 양강한 구이효가 소송의 결과에 불응하고 끝까지 문제를 일으키다가 재앙을 면치 못하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양효와 음효가 정응을 하면 서로 돕지만, 구이의 양효는 구오의 양효와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 둘 다 득중을 하여 막강한 자리에 있으나, 양강함이 부딪쳐서 다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송사의 주체인 구이는 군주의 자리에 있는 구오와 다투어 이기지 못하니 300호 정도 되는 작은 마을로 도망을 가서 적대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 아닐까한다.
육삼 - 옛사람이 남긴 음덕을 지키며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면 위태롭기도 하지만 마침내 길하게 될 것이다. 식구덕(食舊德)이란 고유의 미덕을 지키며 인내하는 것을 가리킨다. 육삼은 음효가 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하괘에서 중을 벗어나 있으므로 득위도 득중도 하지 못했다.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바르지 않으므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옛사람이 남긴 훌륭한 미덕을 참고로 다소곳이 분수를 지키고 있으면, 잠시 위태롭기도 하지만 혹시나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유약한 태도로 윗사람의 눈치만 살피다가는 왕을 모시는 일과 같은 큰일은 성취하지 못한다.
구사 - 송사를 해도 이기지 못한다. 다시 돌아와 정도를 지키면서 천명에 따르면 처음에 소송을 하겠다는 태도를 바꾸었다는 인정을 받게 된다. 소송을 하지 않게 되니 평안해진다. 복(復)은 처음의 상태로 돌아간다(返)는 뜻이며, 즉(卽)은 따른다(從)는 뜻이다. 명(命)은 천리(天理) 또는 즉 정도(正道)를 가리킨다. 투(渝)는 바뀐다는 뜻이다. 구사는 가장 양강(陽剛)한 건괘(乾卦)에 속하지만 득중을 하지 못하여 중도를 잃고 무엇인가 일을 꾸미고자 한다. 그러나 구오는 너무 강하여 상대를 할 수 없고, 아래에 있는 육삼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정응을 하고 있는 초육은 그저 순종을 할 뿐이다. 따라서 다툼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을 바꾸고 편안하게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길하게 된다.
구오 - 송사를 하더라도 크게 길하게 될 것이다. 구오는 득중과 득위를 하여 송사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송사를 판결하는 것보다 미리 방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德이다. 앞의 효사에서 말한 불영소사(不永所事), 불극송(不克訟), 식구덕(食舊德)은 모두 구오의 이러한 덕이 펼쳐진 구체적인 모습이다.
상구 - 양강함이 극에 이르러 위세를 당당하게 부리며 다투어 이길 수가 있으나, 빼앗은 반대(鞶帶)를 하루에 몇 번이라도 도로 빼앗길 수가 있으므로 오랫동안 가질 수가 없다. 석(錫)은 하사(下賜)한다는 뜻이며, 반대(鞶帶)는 관복을 장식하는 띠를 가리킨다. 치(褫)는 빼앗긴다는 뜻이다. 소상에는 송사로 관복(冠服)을 받더라도 그리 존경받을 일은 아니라고 하였다. 반대는 신하가 받는 것이지만 상구는 이미 신하의 자리가 아니므로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어울리지 않는 것을 욕심을 부려서 차지하면 빼앗긴 사람도 승복을 하지 않는다. 상구는 관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세력을 지닌 권세가에 해당한다. 권력을 이용하여 송사에서 이겼지만, 사람들이 승복할 리가 없다. 여론이 좋지 못하므로 결국은 부당하게 차지한 것을 도로 빼앗기게 된다.
송괘의 괘상은 상부에는 강건함을 상징하는 건괘(乾卦☰)가 있고, 하부에는 험난함을 상징하는 감괘(坎卦☵)가 있다. 강건함이 험난함의 위에 있어서 험난함을 강건함으로 대처하니 반드시 시비를 따지는 쟁송이 발생한다. 송괘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미리 신중하게 고려하여 계획을 세우고, 옳고 그름을 따져서 분쟁이나 쟁송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음속에 성실함과 신뢰감을 가지고 괜한 위세를 부리며 억지로 목적을 달성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을 하고, 논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며, 중용의 도로서 화합을 이루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만약 억지로 분쟁을 일으키면 반드시 흉하게 될 것이다. 공정한 사람을 만나면 유리하겠지만, 분쟁으로 인한 함정에 빠지는 경우는 피해야 한다.
사람들과 분쟁을 피할 수가 없을 때는 오래 끌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비록 가벼운 책망을 듣게 될지는 모르지만 마침내는 화합을 이루게 된다. 초육의 효사는 그것을 말하고 있다. 구이는 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물러나야 할 때임을 알고 억지로 다투지 말고 납작 엎드리더라도 재앙을 피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육삼은 조용히 참고 기다리면서 자기 고유의 미덕을 지키면, 불리한 역경을 만나게 되더라도 피할 수가 있으며, 마침내 길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구사는 분쟁을 지나치게 일으키지 말고 도리어 정도를 지키면서 처음의 상황으로 돌아가 갈등요인을 바꾸어나가면 정당한 이치에 따르게 되므로 화합을 잃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구오는 올바른 일이라면 분쟁을 일으켜도 좋다는 것을 가리킨다. 상구는 억지로 분쟁을 일으켜 이기게 되더라도 이겨서 얻은 것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지 말아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 | 작성일자 : 2012년11월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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